[ 경건칼럼 - 2024년 09월 07일 ]
하나님 없는 번영
Ⅰ. 본문해설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불순종하며 살던 때를 회고하며 지은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종종 잊기 쉬운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합니다. 세상에서의 번영이 항상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자주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굶지 않도록 하늘의 만나를 내려주신 것에 대한 감격도 이내 불평으로 변했습니다. “우리가 이것만 먹고 살아야 하나?” 그래서 하나님이 이번에는 메추라기를 보내셨습니다(민 11:32). 그런데 성경은 말합니다. “고기가 아직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민 11:33). 결국 본문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심이 항상 사랑의 표시는 아닙니다.
Ⅱ. 악인의 변명
때로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욕심대로 행할 때 내버려 두십니다. 그때 득의한 것 같지만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은 경건한 백성들에게 악인의 번영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악인에게도 분명 번영이 있지만 저희의 번영은 아침에 벤 풀과 같아서 내버려 두면 전부 마르고, 끝에는 지푸라기처럼 가느다랗게 되어 바람에 사라지는 것입니다(욥 24:24). 그것이 악인의 결말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깨닫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은혜에서 멀어진 사람들도 때로는 번영하도록 내버려두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실패를 통해 굳어지기도 하지만 ‘번영 가운데 굳어지는 마음’은 더 위험합니다. 더욱이 그것이 악인이 번영이라면 부러워할 것이 있겠습니까?
Ⅲ. 신자의 번영
신자가 외적으로 번영해도 파리한 영혼을 가지고는 참된 평강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하는 자들에게 돈을 주고 물질을 주셔서 번영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영혼에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시는 것을 더 깊고 풍성하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은혜로부터 떨어지면 하나님의 사랑을 자꾸 외적인 것에서 확인하려 하고, 외적인 번영을 부러워하며, 자신의 번영만을 자랑하게 됩니다.
본문 말씀인 “여호와께서 저희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지라도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도다”는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가운데 생기와 힘을 잃어버린 영혼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여기서 죄와 은혜의 문제의 역설적인 관계를 봅니다. 곧 은혜가 떨어지면 은혜가 없이 할 수 있는 일들에 있어서는 활발하지만, 은혜가 없이 할 수 없는 일들은 할 수 없습니다.
영혼을 향한 뜨거운 기도, 말씀에 대한 간절한 갈망, 예배에 나오는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목마름, 지체에 대한 뜨거운 섬김과 같은 것들은 전부 영혼으로 하는 것이므로 파리한 신자의 영혼은 이것들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이 번영하고 순조롭게 모든 것이 잘된다고 할지라도 절대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번영을 자랑하며 하나님을 간절히 찾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번영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해도 영혼을 파리하게 만들 것입니다.
Ⅳ. 결론
우리가 하나님께 구할 가장 시급한 일은 영혼의 파리함을 면하는 것입니다. 영혼이 하나님을 만나고 그 큰 사랑과 은혜 안에 있을 때, 삶이 변화되고 하나님이 복을 내려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삶의 순서입니다. 주님은 매순간 우리로 하여금 이런 믿음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우리가 파리한 영혼으로는 아무 선한 것도 할 수 없음을 아시기 때문에 자기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끊임없는 은혜를 주십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의 관심 자체가 깊이 변해야 합니다. 자신의 영혼의 상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주님 앞에 바르게 살려고 할 때 주님이 주신 많은 축복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쓰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없는 외적인 번영으로 인하여 마음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말고 영혼이 궁핍한 상태일수록 하나님께 간구하며 나아가십시오.
[ 스펄전과 함께 QT - 2024년 09월 07일 ]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마가복음 2 : 4)
믿음은 어떻게든 그 방법을 생각해 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집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문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주님께 나아가 중풍병자를 그 앞에 내려놓을 수 있는 길을 발견했습니다. 만일 보통 방법으로 죄인들을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데려갈 수 없다면 특별한 방법들을 사용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5 : 19 말씀을 보십시오. 본문에 나오는 이 친구들은 그 집 지붕의 기와를 뜯어냈습니다. 그로 인해 먼지가 많이 났을 뿐 아니라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위험 부담까지 안겨 주었습니다. 그러나 일이 아주 긴급할 때는 어느 정도의 위험을 무릅써야 하며 단정함이라든가 예절 같은 것에 너무 신경 쓰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병자들을 고쳐 주시기 위해 그 곳에 계셨습니다. 따라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믿음은 그 불쌍한 중풍병자의 죄가 용서받을 수 있도록 그를 주님 앞에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이처럼 담대한 믿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아침에는 우리 자신과 우리와 함께 사역하는 동료들을 위해 이런 믿음을 구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오늘은 영혼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뭔가 용감한 일을 해보시지 않겠습니까? 이 세상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고안해 냅니다. 천재가 인간 소욕이 원하는 모든 것을 고안해 냅니다. 그렇다면 믿음도 고안해 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무언가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 주위에 멸망해 가고 있는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손을 뻗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중풍병자를 지고 온 네 명의 친구들이 그렇게 담대한 용기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곳에 예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주님은 지금 우리들 가운데도 계시지 않습니까? 우리 자신의 영혼도 주님의 치유 능력을 느끼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문이나 창문이나 지붕을 통해 어떤 장애물이든 뚫고 들어가 불쌍한 영혼들을 예수님께 내려놓는 수고를 합시다. 참 믿음과 사랑으로 영혼들을 주님께 인도하는 거라면 어떤 수단이든지 다 선하고 단정한 것입니다. 배가 고프면 돌벽도 뚫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영혼들에 대한 기갈로 어떤 노력이든 불사해야 할 것입니다. 오 주님, 저희가 죄로 병든 주님의 불쌍한 사람들에게 손을 뻗칠 수 있는 방법들을 속히 내놓을 수 있도록, 어떤 위험도 무릅쓰고 담대히 그들을 주님께 인도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 J.I패커와 함께 QT - 2024년 09월 07일 ]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롬 6 : 4, 5)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 성육신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되셨다. 우리의 죄를 없애시려고 십자가의 죽음을 맛보셨다. 그는 부활하심으로 다시 육신을 입고 영원한 삶을 시작하셨다. 그리고 승천하셔서 하늘의 영광으로 다시 들어가셨다. 이것이 종종 신학자들이 그리스도 사건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것은 실제로 2000년 전에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났던 역사적인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다른 사건들처럼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역사의 테두리를 넘어선 것이다. 그것은 언제, 어디서, 어느 누구에게나 관련될 수 있고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모든 신자들이 실제로 죽었다가 살아났고 지금은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을 통해 살면서 통치하고 있다는 굳건한 반석과 같은 사실에 근거하여 개인에게 영향을 미친다.
모든 그리스도 사건의 능력의 근원이며, 우리가 믿음으로 다가가는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심으로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잡으셨을 뿐 아니라 우리를 그의 죽으심과 부활과 통치에 참여하도록 만드신다. 따라서 우리는 그분과 즐겁게 교제하며 살아간다(1994a:120). 묵상: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나는 죄에 대해 죽었고 새생명으로 부활하였다.
[ 하나님을 맛보는 묵상 - 2024년 09월 07일 ]
무력감과 승리감 사이에서
잘못된 기대를 가지면 좋은 관계는 나쁜 관계로 변질되기 쉽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4장 14절에서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읽고 예수님께 가면 내 모든 소원이 그 자리에서 다 이루어지고 모든 불만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다음 성경 구절들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불만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을 시사해준다.
.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빌 3:12).
.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롬 12:15).
.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눅 18:7).
.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롬 7:17).
.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 만일 우리가 범죄 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 1:8, 10).
.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롬 8:23).
한 사람을 생수의 근원이신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것으로 우리는 만족을 느낀다. 그리스도는 깊고 지속적인 만족의 근원이다. 하나님과 만족스러운 관계를 갖기를 간구하는 기도도 성경에 나와 있다.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시 90:14). 그러나 이런 만족은 단번에 생기지 않는다. 예를 들어 육신은 이 땅에서 많은 고통을 겪다가 결국 죽어서 썩는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 16절에서 겉 사람은 낡아간다고 말했다. 썩어가는 경험은 소망에 의해 구원으로 변화되고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서로 협력하게 하여 선으로 변화시키신다(롬 8:24, 28).
그렇지만 우리는 고통스러운 상태에서 여전히 만족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약속하셨지만 로마서 8장 23절은 이 약속이 고통스러운 실재임을 보여준다.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부분적으로 만족하고 있다는 또 다른 예는 우리 마음이 부패해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아직도 죄를 짓고 있고 거듭 용서받아야 한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요일 1:8). 정말 우리는 매일 죄를 짓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실 것을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마 6:12). 그렇다! 이런 불완전함도 소망으로 변화되고 매일 깨끗함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죄성에 여전히 불만이고 보다 순결하고 성결하고 사랑이 넘치게 되기를 부르짖으며 간구한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빌 1:9).
부분적 만족의 또 다른 예는 우리 육신의 연약함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마 26:41)고 지적하셨다. 우리는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봉사하고 싶지만 육신의 약함으로 인해 자꾸만 게을러지고 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게으르지 말고,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라(히 6:12, 12:12)고 재촉한다. 우리는 열심을 내고 싶을 때 약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예배드리고 순종할 때도 늘 불만이 있는 것이다. 이런 것도 그리스도는 변화시켜주신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드리는 찬양과 순종의 제물을 비록 불완전할지라도 기꺼이 받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
그러므로 그리스도에게 가면 주님은 우리에게 완전한 만족을 주신다. 그러나 지금은 그 만족의 많은 부분을 소망으로, 용서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형태로 주신다. 그러나 내세에서 완전함을 받을 때 우리는 완전한 만족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자신에 대해, 우리 환경에 대해 실망하거나 불만을 느끼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리스도인은 절망과 할 수 있다는 가능성 사이에서 걸어가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한편에는 절망적인 무기력이 도사리고 있고 다른 한편에는 섣부른 낙관론의 함정이 있다.
참 군인은 갑옷을 입을 때에 자랑하지 아니하고 갑옷을 벗을 때에 자랑하는 법이다 (왕상 20:11). 가운데 서서 걸어가면 우리는 은혜로 주시는 능력과 약속에 대해 겸손하고, 활기 있고, 기쁘고, 늘 회개하는 확신을 갖게 될 것이다.
[ 은혜와 사명 - 2024년 09월 07일 ]
충성스러운 삶은 신자를 변화시킵니다.
[ 성구 ]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약 1:22)
[ 내용 ]
한 교회에 아무리 애를 써도 영혼의 변화가 없는 한 자매가 있었습니다. 잘 타이르거나, 조금 지나치면 따끔하게 혼을 내어도 처음에는 조금 변화되는 것 같다가는 항상 제자리로 돌아오는 자매였습니다. 어느 날 담당 전도사님이 그 자매를 불렀습니다. 그러고는 주일학교 교사를 해 보지 않겠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사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제안이 아닙니까? 신앙에 열심이 있는 사람이 해도 부담스러운 직책이 교사인데, 교사를 하라고 권하는 전도사님의 의중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자매는 그나마 신뢰하는 전도사님의 권유라서 한번 재미삼아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전도사님은 자매의 영혼의 상태에 얽매이지 않고, 다른 교사들에게 하는 것처럼 교사로서의 의무를 모두 감당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매주 경건카드, 아이들 심방, 중보기도, 노방전도까지……. 처음에 그 자매는 매일 억지로 거의 울다시피 하면서 따라다녔지만 그런 의무를 행하면서 조금씩 자신의 영혼이 변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차츰 차츰 자매는 자신이 하는 의무에 마음을 실어서 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어떤 교사들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영적으로 성숙한 모습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목회하고 있는 교회에서 지금도 주일학교 교사로 충성스럽게 섬기고 있는 한 자매의 실제 이야기입니다.
반복되는 성경공부, 목회자에게 받는 자상한 가르침을 통해서 사람이 변화될 수도 있지만 이 자매처럼 충성스러운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가고, 그로 인해 삶이 변화될 수도 있습니다. 방대한 기독교 교리에 대한 정리된 지식, 시간을 거르지 않고 끊임없이 부르짖는 기도, 지속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서 자라려는 열심, 이 모든 것들은 구원 받은 신자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자세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런 모습을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열심이 충성된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깔끔하게 정리된 지식의 체계가 있어도 영혼이 생명력 있게 성장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광대무변한 성품을 깊이 알았던 사람들, 성경이 인정하고 있는 수많은 인물들은 모두 도서관에서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연구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피비린내 나는 영적 전쟁터를 누비면서 악한 마귀가 들끓는 사명의 자리에서 피 흘리기까지 싸우며 하나님이 누구신지, 참된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아간 자들이었습니다.
결국 우리의 영혼과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차가운 지식이 아니라 충성스러운 삶의 자세가 아닐까요? 충성스러운 마음으로 뭐든지 섬길 때 거기에서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우리 영혼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 묵상 ]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혹, 우리의 지적 만족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충성스러운 삶으로 승화되지 않는 지식은 아무 쓸모가 없음을 기억하십시오.
[ 거룩한 삶을 위한 능력, 100일 교리 묵상: 은혜와 사명 - 부흥과개혁사 ]
[ 은혜와 사명 ]
[ 청교도묵상 - 2024년 09월 07일 ]
고난에 대처하는 성도의 7가지 해결 방법 - 조엘 비키
우리의 인생에서 고난과 시련에 직면했을 때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우리가 고난을 해결하는 법은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1. 고난당하신 그리스도를 먼저 생각하라.
나의 고난을 그리스도의 고난과 비교하라.
내가 고난당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2. 그리스도의 능력을 생각하라.
3. 그리스도의 임재를 깊이 생각하라.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취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일반이니이다.
- 시 139:12
4. 그리스도께서 참으신 것을 깊이 생각하라.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 잠 23:18
5. 그리스도의 기도를 생각하라.
기도를 중단하지 않으시는 그리스도...
6. 그리스도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라.
1) 겸손을 위해서
고난 가운데 있을 때 겸손하라.
2) 죄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
3) 하나님의 얼굴의 도우심을 즉각적으로 구하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백성은 종과 같다. 종은 세게 칠수록 좋은 소리가 난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하나님의 백성은 성숙된다. - 존 번연
4) 그리스도를 위하여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7. 고난의 마지막을 생각하라.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 고전 4:17
- Rev. Joel R. Beeke